젠쓰지 절은 불교 진언종의 사찰입니다. 그 역사는 8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진언종의 시조이자 지역 호족의 아들이었던 구카이(774~835년)가 자신의 선조 대부터 있던 절을 복원하고 젠쓰지 절이라고 개명했습니다. 드넓은 부지에 자리한 다양한 건물들로 구성된 젠쓰지 절에는 현재 2개의 인접한 성역이 있습니다. 구카이가 지은 동쪽 구역 토인 사원과 구카이가 태어난 장소에 지어졌고 19세기 말까지는 다른 사원이었던 서쪽 구역 사이인 사원입니다.
토인 사원의 콘도 불당은 젠쓰지 절의 본당으로, 젠쓰지 절의 본존인 약사여래(의술과 치료를 관장하는 부처)의 목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약사여래는 일본 내에서 시코쿠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오랫동안 폭넓게 숭배를 받아 왔는데, 이 부처님은 내세의 구원이 아니라 현세의 고난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고 믿어져 왔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콘도 불당과 약사여래상은 각각 1699년과 1700년에 건립된 것으로, 원래 건물 및 불상은 1558년 화재에 의해 소실되었습니다. 토인 사원에는 그 밖에도 60년에 걸쳐 한 층씩 건설된 오중탑과, 1904년부터 1905년까지 이어진 러일전쟁에서의 일본 승리를 기념하여 지어진 웅대한 남대문 등 멋진 건축물이 있습니다. 부근에는 천 년이 넘은 수령을 자랑하는 두 그루의 장대한 녹나무가 있으며, 구카이 시대부터 사원 경내에 자리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이인 사원의 부지는 토인 사원보다 약간 좁지만, 미에도 불당에서 참배하는 참배객들로부터 숭상을 받고 있습니다. 구카이가 태어난 장소에 지어진 장엄하고 화려한 미에도 불당은 진언종의 시조인 구카이를 본존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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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히라의 타카토로 등롱은 피라미드 모양을 한 높은 기단 위에 쌓아 놓은 탑 모양의 건축물입니다. ‘타카토로’는 말 그대로 ‘높은 등’을 뜻하며, 보통 불교 사원과 신사에서 볼 수 있는 전통 등롱인 ‘토로’(등롱)라는 말에서 유래합니다.
타카토로 등롱은 JR 고토히라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위치해 다카마쓰에서 오는 관광객들도 방문하기 편합니다. 모든 방문객들이 고토히라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관광 명소입니다.
타카토로 등롱은 선원들의 수호신으로 알려졌으며 여러 신앙을 아우르는 신 콘피라를 중심으로 한 민간 신앙과 관련된 것으로서, 일본의 중요 유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등롱은 콘피라에게 바쳐진 일본 신토 신앙의 성역이자 매년 수많은 방문객들을 매료하는 고토히라구 신사 부근에 있습니다..
3층으로 이뤄진 타카토로 등롱은 1860년에 완공하였고, 그 높이는 27미터에 달하며 일본에서 제일 높은 목조 등롱입니다. 본래 세토 내해를 오가는 선원들을 위한 등대로서 만들어졌으며, 콘피라에게 기도를 드리기 위한 랜드마크 역할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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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이후 고토히라는 부근의 신사나 사원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을 위해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역참 마을 역할을 하였습니다. 치카카네 코린이라는 사람은 한때 고토히라에서 호텔을 경영하고 있었지만, 1997년에 원천을 발견하고 인근의 숙박 시설에 온천수를 공급함으로써 온천 휴양지를 창설하였습니다. 카나구라강 주변에서부터 고토히라 신사 부근까지 이어지는 고토히라 온천 지구에는 16개의 여관이 있으며 모두 이 물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입욕자는 다양한 수질의 온천수를 선택해서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수질은 나트륨·칼슘 염화물 온천, 식염이 포함된 중탄산 토류천, 단순 약방사능 냉광천 등 시설에 따라 다르고, 신경통이나 통풍 등 다양한 효능이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온천을 골라서 즐길 수 있습니다. 고토히라 온천 축제는 1년에 한 번 개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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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히라구 신사는 에도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일생에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장소였으며, 지금도 카가와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 중 하나로 그 매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본당에 가려면 785개의 돌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편도로 대략 30분 걸립니다. 그 길을 따라 수많은 가게와 음식점, 전통 여관(료칸)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본당에 도착하면 그 중심부에 있는 신사에 이르는 583개의 돌계단이 한 번 더 나타납니다. 전체 방문객 중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첫 785개의 계단을 오르고 나서 그만두지만, 도전해 볼만하다고 생각되면 1368개의 순례 길을 완수할 수도 있습니다.
본당을 향하는 도중에 역사적 유물과 예술품을 소장하는 보물관을 지나게 됩니다. 그리고 19세기의 사실주의 화가 타카하시 유이치의 작품을 전시하는 타카하시 유이치 뮤지엄이 있습니다. 길을 따라 더 가면, 미닫이문과 벽이 17세기 유명 화가 마루야마 오쿄의 그림으로 꾸며진 서재(오모테쇼인)를 발견할 것입니다. 서재 근처에 위치한 카페 & 레스토랑 카미쓰바키에서 잠시 쉬었다 갈 수도 있습니다. 조금 더 가면, 구름, 사람, 동물, 식물 등 다양한 대상들을 묘사한 복잡한 장식이 있는 아사히야시로 신사에 다다릅니다. 서재와 아사히야시로 신사는 둘 다 일본의 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입니다.
타카하시 유이치 뮤지엄 앞에는 ‘콘피라 이누’의 동상이 있습니다. ‘콘피라’는 고토히라구 신사의 애칭 ‘콘피라상’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누’는 개를 의미합니다. 에도시대 일반 서민들은 신사와 절을 방문하는 것 외에는 여행할 수 없었습니다. 동일본에 살던 이들에게 고토히라구 신사로 여행을 가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어서, 자신을 대신하여 여행에 익숙한 지인에게 공물을 가져가 바치도록 부탁했습니다. 그 중에는 그 임무를 자신의 개에게 맡기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 개가 안전하게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다른 순례자들이 돌봐 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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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에 창건된 카나마루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가부키 극장입니다. 에도시대 중기(18 세기)에 콘피라 다이곤겐(현재는 콘피라상이나 고토히라구 신사로 알려져 있습니다)이 일본 국내 참배의 성지가 됨에 따라 전국으로부터 고토히라에 참배객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참배객들을 대상으로 가설 연극 극장에서 1년에 수차례 가부키 등 오락이 제공되어 왔습니다. 신사를 중심으로 거리가 발전·확대되어 감에 따라 콘피라 오시바이 극장이 순례자들을 즐겁게 해 주는 상설 가부키 극장으로서 건설되었습니다. 1900년경에는 카나마루자로 이름이 바뀌었고, 그때부터 그 애칭으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카나마루자는 1970년에 중요 문화재로 등록되었습니다. 1972년부터 4년간에 걸쳐 현재 위치에 해체·재건되었고, 2003년에는 시작된 복원 작업에 의해 극장은 에도시대의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1984년, 카나마루자는 가부키계의 주목을 모았습니다. 제2대 나카무라 키치에몬, 제2대 사와무라 토주로, 제5대 나카무라 칸쿠로 등 세 사람의 유명한 가부키 배우가 카나마루자를 방문해서 TV 프로그램을 제작한 후 일본 전역에 카나마루자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 사람은 카나마루자의 독특한 분위기와 전통적인 디자인에 매료되어 정기적으로 공연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1985년 6월 말, 키치에몬이 이끄는 극단은 「사이카이자쿠라 미소메노 키요미즈」(키요미즈에서 처음 만난 이후 벚꽃 밑에서의 재회)라는 작품과 「니와카지시」(용맹한 사자)라는 무용을 카나마루자에서 공연하였습니다.
1985년 이후 매년 4월 또는 5월에 '시코쿠 콘피라 오시바이'이라는 가부키 공연이 개최되게 되면서 시코쿠에 봄이 찾아옵니다. 유명한 가부키 배우들이 출연하고, 관객들은 원래 가부키가 공연되던 아담한 극장에서, 무대나 하나미치 가까이서 배우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면서 현장감 넘치는 가부키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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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에 지어진 코토히라초 공회당은, 많은 동아시아 국가에서 사용되던 전통적 일본식 건축 양식인 이리모야(팔작지붕)로 되어 있습니다. 이 양식에서는 4개 지붕 측면이 모두 경사를 이루고 있고, 서로 마주보는 2면에 있는 합각으로 결합됩니다. 이것은 통상 앞면과 뒷면이 각각 경사를 이룬 큰 지붕 부분과 양 측면의 작은 지붕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양식은 일본의 불교 사원이나 신사, 관저나 성곽, 주택 등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반 주택의 경우에는 모야즈쿠리(본채 구조)라고 합니다.
이 양식의 가장 초기 예는 조몬시대의 건축물(기원전 14,000~300년경)에서 보여지며, 일본의 유명 건축물에 많이 도입되어 있습니다. 건물 측면으로 뻗어 나가는 합각지붕이 이 건축 양식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코토히라초 공회당은 목조 건물로, 판자를 얹은 커다란 합각지붕, 요인용 입구동, 일본식 방을 갖춘 본채가 특징입니다. 아름다운 목조 판자지붕은 유서가 깊어 그 역사는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홀에는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극장 공간이 있습니다. 콘서트나 그 밖의 지역 이벤트가 이곳과 정원에서 정기적으로 개최되며, 변화하는 사계절의 경치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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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누키 우동을 만들어 보자
우동 만들기는 무척 재미있는 체험이며, 또 예상보다 만들기 쉬워서 깜짝 놀랄 것입니다. 카가와현에는 강좌를 제공하는 곳이 많습니다. 이곳에서는 5인분의 우동을 만드는데 필요한 양의 밀가루부터, 계절마다 달라지는 소금과 물의 양까지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소금 양은 여름에 가장 많이, 겨울에는 가장 적게 필요합니다.
필요한 재료를 배우고 나면 우동을 만들 준비가 되었습니다. 재료를 섞고, 음악에 맞추어 발바닥으로 평평하게 눌러주고, 반죽을 숙성시킨 후, 마지막으로 얇게 펴서 가늘고 긴 띠 모양으로 잘라 줍니다.
강좌 후반에는 직접 만든 우동을 삶아서 먹을 수 있습니다. 또 직접 반죽한 밀가루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으므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대접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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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킨료의 기원은 16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술 양조회사 몇 곳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쓰루하야로, 이 회사를 이어받은 하네야가 술의 상표을 쓰루타야로 바꾸었습니다. 이 회사의 양조장이 에도시대 말기인 1789년에 제8대 니시노 카에몬에 의해 매수되면서 청주 킨료가 탄생하였습니다.
코토히라 본점에는 3개의 양조장이 있었는데, 그 중 대로에 면해 있던 것이 제2고(제2 양조장)라고 불렸으며, 크기는 약 2,916㎡였고, 1988년에 킨료노사토로서 개업하였습니다. 건물 입구에는 삼나무의 작은 가지로 만든, 스기다마라고 불리는 삼나무 방울이 있는데, 전통적으로 양조장 처마에 매달아 술이 갓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 유서 깊은 양조장에는 전 양조회사의 흰색 벽이 남아 있습니다. 킨료노사토를 찾은 손님들은 시청각 정보를 통해 당시의 양조에 대해 학습하기도 하고, 옛 양조 도구와 양조 공정을 견학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술 문화를 배우며 편한 분위기 속에서 청주와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수령 900년 된 녹나무 아래 그늘에서 술을 즐기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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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노 마을은 카가와현 남서부, 도쿠시마현과의 경계 근처에 있습니다. 해바라기는 1989년 휴경 중인 경작지에 처음 심어진 이래 이곳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인구는 2만 명 미만이지만 120만 송이의 해바라기가 매년 여름 이 도시의 인구를 훨씬 웃도는 방문객을 끌어들입니다. 해바라기는 7월에 만개하여 샛노란 바다를 이루며, 이 시기에 또한 마을에서는 이를 축하하기 위해 히마와리(해바라기) 축제가 열립니다. 보고 즐기는 것 외에도 해바라기는 마을의 소중한 자원입니다. 한때 초등학교였던 건물을 이용하여 2018년에 오픈한 현지 공장에서는 해바라기 씨앗을 짜서 기름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압착부터 병입까지 전 생산 공정을 담당하는 이 공장에서는 만노에서 자란 해바라기씨만을 사용합니다. 씨앗의 영양분을 유지하는 저온 압착법으로 추출된 기름은 첨가물이나 보존료를 포함하지 않는 올레산이 풍부한 제품입니다. 만노 해바라기씨유는 샐러드 드레싱의 주성분으로도 사용되고 있으며, 일부 깻묵(씨앗에서 기름을 추출한 후 남은 찌꺼기)은 ‘해바라기 쇠고기’라고 불리는 현지 소의 사료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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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노이케 저수지는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장소인 동시에, 카가와에 사는 오늘날의 농가에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수원이기도 합니다. 둘레 약 20km, 3,000헥타르에 이르는 농지의 관개에 사용되고 있으며, 수 세기에 걸친 역사 깊은 관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간 강수량이 적은 카가와현에서는 농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복되는 가뭄과 만성적인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만노 최초의 저수지는 8세기 초 사누키국(현재의 카가와현)의 영주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영주는 하류의 논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가나쿠라강에 댐을 건설하였습니다. 댐은 818년에 붕괴되었지만, 3년 후 사누키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불교 승려 구카이(774~835년)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구카이는 중국에서 밀교와 선진 기술을 배워 왔고, 그때까지 일본에 없던 기술을 이용해서 강의 계곡 가장 좁은 부분 바로 상류에 아치형 댐을 만들었습니다.
저수지에 구카이가 만든 댐은 수 세기에 이르는 세월 동안 여러 차례 보수되거나 바닥을 깊게 파는 공사가 진행되어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곳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은 꼭 한번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봄에는 3,000그루가 넘는 벚나무가 구릉을 분홍빛으로 수놓고, 가을에는 숲들을 온통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물들입니다. 구카이가 탄생한 날이자 여름의 물 개방 시작일이기도 한 6월 15일에는 만노이케 저수지에서 가장 큰 이벤트가 개최됩니다. 저수지의 수문이 열리고, 모내기 시즌을 위해 논에 많은 물을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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넨부쓰 오도리(‘염불 춤’. 불교에서 기도를 올리면서 추는 춤)은 아야가와초에서 관장하는 예능 행사입니다. 매년 8월 25일 타키노미야 신사와 타키노미야텐만구 신사라는 2개의 신사에서 진행됩니다. 중요 무형 민속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이 춤은 그 역사가 1,000년이 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서기 889년 사누키 지방(현재의 카가와현)은 미증유의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이 재액을 끝내기 위해 사누키의 지방 관리였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845~903년)가 7일 밤낮으로 단식을 하며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늘은 미치자네의 기도에 부응했습니다. 마침내 비가 내렸고, 크게 기뻐한 사람들은 타키노미야 신사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습니다. 이것이 미치자네에게 감사를 올리며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행해지는 이 춤 의식의 유래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춤을 추면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는데, 이것은 약 300년 후에 종교 개혁자 호넨(1133~1212년)이 추가한 것이며, 이리하여 넨부쓰 오도리가 탄생하였습니다.
매년 8월 25일 아야가와초에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11개 춤 단체 중 3개 단체가 타키노미야 신사에 모여 넨부쓰 오도리를 춥니다. 그 후, 부근의 타키노미야텐만구 신사까지 행진하며 다시 한 번 춤을 춥니다. 이듬해에는 다시 다른 3개 단체가 춤을 추고, 그 이듬해에는 또 다른 3개 단체와 교대합니다. 그리고, 5년마다 종합 춤 행사의 일부로서 11개 단체가 모두 함께 춤을 공연합니다. 다음 번 종합 춤 행사는 2023년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넨부쓰 오도리는 춤꾼이 정교한 의상을 착용하고 지역 어린이들이 북을 치며 참가하는 화려하고 박력 넘치는 행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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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천황 즉위에 따르는 의식은 많이 있으며 매우 복잡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이조사이가 있습니다. 장엄한 신도의 감사 의례로, 천황은 새로 수확한 쌀과 그 밖의 산물을 조상신과 천지신명에게 바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천황이 신들로부터 사랑받도록 하는 의식입니다. 7세기 이후 다이조사이에서 사용하는 쌀은 나라의 동부와 서부에서 하나씩 합계 2개의 논에서 수확된 것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수확하는 논을 어느 논으로 할지는 거북의 등딱지를 이용한 점 의식을 통해 결정됩니다. 이 의식에서는 각각의 논이 도읍에서 보아 대략적으로 어느 방향에 있어야 하는지가 제시됩니다. 다이쇼 천황(1879~1926년) 즉위 당시 1914년에 거북의 등딱지가 제시한 곳이 바로 카가와현이었습니다. 현재의 아야가와초의 논이 신성한 쌀의 서일본 공급원으로서 선정되었습니다.
천황을 위한 벼는 1915년 11월에 거행되는 다이조사이에 대비해서 같은 해 5월에 심어졌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며 그 의식용으로 만들어진 노래를 부르는, 세심하게 준비한 모내기 의식이 1986년 이후 매년 6월에 아야가와초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이 스키사이덴 축제는 1915년에 다이조사이의 벼를 재배한 논의 옆에서 실시되며, 1세기 이상 전에 황실이 아야가와에 하사한 커다란 명예를 기념하여 설립된 학교의 학생을 포함한 지역 학동들이 진행합니다. 그 논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스키사이덴 기념관에서는 1914년과 1915년의 이벤트를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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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은 카가와현에서 특히 인기가 높고, 일본 내에서 1인당 소비량이 가장 많은데, 카가와현에서는 특산품인 '사누키 우동'이 유명합니다. 사누키란 현재의 카가와현을 가리키는 에도시대 구 명칭으로, 수백 년간 우동은 카가와현의 식생활을 지탱해 온 주류였습니다. 에도시대 이후 카가와현은 맛있는 우동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카가와현은 오래전부터 우동으로 유명했습니다. 맛있는 우동을 만드는 데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카가와현은 옛날부터 양질의 밀가루와, 우동 육수에 사용되는 이리코(마른 멸치)가 풍부하게 공급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게다가 강우량이 적어서 제염 산업이 번창했는데, 소금은 우동의 중요한 성분입니다.
또, 쇼도시마섬은 육수에 사용하는 맛있는 간장을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사누키 우동은 우동 반죽을 발로 밟아 만드는 것이 특징으로, 쫄깃쫄깃한 느낌을 더욱 탄력 있고 차지게 만듭니다.
카가와현 사람들은 연중 내내 최고 품질의 밀가루, 소금, 간장, 그리고 카가와현 지역에서 이리코(카타쿠치 이와시)로 알려진 마른 멸치로 만든 맛있는 다시(육수)로 만들어진 우동을 많이 먹습니다. 카가와현은 우동에 무엇을 얹어 먹을지를 본인이 정할 수 있는 ‘셀프 우동’으로 알려진 셀프 서비스식 우동의 발상지이며, 다양한 우동 요리로도 유명합니다..
우동 요리의 종류를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카케
육수는 담백하며, 잘게 썬 파와 기호에 따라 튀김가루를 얹은 우동입니다.
키조유(생간장)
간장을 조금 넣은 우동입니다. 양념간장에 일본풍 양념이나 향미료를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붓카케
카가와 사누키 우동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요리로, 소량의 진한 육수에 담겨 나옵니다.
유다메
유다메 우동의 면은 익을 때까지 삶았다가 일단 찬물에 헹군 후 다시 끓입니다. 우동을 육수에 찍어 먹습니다.
싯포쿠
고기나 야채도 들어간 달콤한 육수의 우동입니다. 가정에서 먹을 때는 타로(토란), 당근, 무, 또는 튀긴 두부를 넣는 한편, 점포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튀김이나 치쿠와(어묵의 한 종류)와 함께 제공됩니다.
카마아게
이 우동은 솥에서 꺼낸 채로 찬물에 헹구지 않고 따끈따끈한 상태로 먹습니다. 약간 익지 않은 듯한 맛과 끈적끈적한 식감의 우동입니다.
카마타마
그릇에 담은 카마아게 우동에 계란, 육수, 일본풍 양념, 그리고 간장을 추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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